DAY 1

Aug 11 2013

대학생 때, 매년 방학 시즌이 오면 고모는 나에게 가고 싶은 곳을 묻곤했다. 걱정이 많은 엄마에게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고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여행은 고모와의 여행이었다.
나같으면 그저 뜨끈한 사우나에 들어가서 피로를 풀거나, 집 앞 카페에 가서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게 더 좋을 것 같은 나이지만, 고모는 달랐다. 언제나 당차고 빠른 걸음걸이로 방방곡곡 돌아다니는 것을 즐겼다.

때로는 그냥
가고 싶은 곳이 있다

더운 여름, 한 발자국 걷기도 싫은 날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는 없어 조심스레 내 머릿속 여행 버킷리스트를 찾았다.

보통은 명성에 이끌려,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에 이끌려, 때로는 소문난 음식에 이끌려 여행지를 선택하곤 하는데, 별다른 정보 없이도 왠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는 것이라곤 교과서에서 본 마을을 둘러싼 강 사진과 하회탈 뿐이던 안동 하회마을은 그런 곳이었다.

아침 일찍 출발하여 영주 부석사를 들러 안동에 도착하니 저녁 무렵이었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한 시간 쯤 달려 하회마을로 향했다.

이미 해가 진 시각, 말로만 듣던 시골밤의 어둠을 몸소 체험하며 달빛에 의존해 살금살금 걸어 들어가니 다행히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불을 밝혀주던 초가집 한 채가 보였다. 우리가 묵을 민박집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구부정한 자세로 샤워를 하고, 밤이 늦었지만 저녁을 차려주겠다는 주인 할머니의 호의에 여태 먹어본 중 최고의 고등어구이로 배를 불렸고, 불 밝은 방으로 들어오려고 창호지에 쉴새없이 몸을 부딪히는 수많은 벌레 떼들의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DAY 2

Aug 12 2013
현실을 부정하게 했던 풍경들

이른 아침의 하회마을은 그 흔한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여름의 녹음과 오랜 초가집들과 흙길 뿐인 이 곳에 울려퍼지는 매미 소리는 또 어찌나 우렁찬지.

그런 풍경속에 나와 고모 말곤 아무도 없었으니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과거로 온게 아닌가하는 착각이 이상하지 않았다.

집들마다 놓여진 신발이나 옷걸이, 고무호스나 우체통, 자전거 등 최소한의 연출이라도 없었다면 무서울뻔 했을것이다.

자꾸 담장 너머를 관찰하게 되는 것도 아직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닐까.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동안에 해는 어느새 야금야금 올라와 내 살갗을 태우고 있었다.
참을만한 더위에서 참을 수 없는 더위로 바뀌어 가는 순간이었다.

하회마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인 부용대까지 올라갔다 온 뒤엔 이미 옷은 땀에 절어있었다. 남자였다면 정말이지 웃통을 훌렁 벗어던지고 싶었다.
마을을 오며가며 본 한 한옥의 대문에 씌여진 미숫가루라는 붓글씨가 자꾸 떠올랐다.

우리는 내려오자마자 곧장 그 집으로 향했고, 주인 아주머니께서 내어온 얼음 띄운 미숫가루 한 그릇은 그 집이 그 자리에 존재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설명해주기에 충분했다.
서울에선 애써 찾지도 않았던, 아니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미숫가루가 그 순간에는 얼마나 맛있던지 잊을 수 없었다.

그리움이 있는 곳

그 동네에 있던 모든 요소들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아무리 많은 이방인이 와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오히려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나의 존재가 자연스러웠다.

벌레도 많고 집도 불편하지만, 여름엔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를 정도로 뜨겁지만, 그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호화도 전혀 없다. 하지만 도시로 상경한 사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다시 가고 싶은 그리움이 있는 마을이 바로 안동 하회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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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은여행지#안동#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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